장기간의 단절이 아닌, 연속된 만남의 역사
이슬람과 한국의 관계는 20세기에 갑자기 형성된 현상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1,300년이 넘는 시간에 걸쳐 간접적·직접적인 접촉을 반복해 온 역사적 과정의 결과이다. 한반도에서 이슬람은 지배 종교가 된 적은 없지만, 교역, 문헌 기록, 인적 교류, 그리고 현대에 이르러 제도적 정착을 통해 지속적으로 존재해 왔다. 한국에서 이슬람의 역사는 단절이 아니라 시대별 형태를 달리한 연속의 역사라 할 수 있다.
신라 시대: 이슬람 세계가 인식한 ‘동방의 나라’
이슬람이 7세기 아라비아반도에서 등장한 이후, 무슬림 상인과 여행가들은 빠르게 중앙아시아와 중국으로 진출하였다. 이 과정에서 한반도는 직접적인 교류의 대상은 아니었으나, 이슬람 세계의 문헌 속에 ‘신라(Shilla)’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9~10세기 아랍과 페르시아의 지리서 및 여행 기록에는 신라가 중국의 동쪽 끝에 위치한 나라로 소개되며, “사람들이 정직하고 도둑이 거의 없는 나라”, “금과 보물이 풍부한 나라”로 묘사된다. 이는 이슬람 문명권이 이미중세 시기에 한반도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료이다.
이 시기 신라에 무슬림 공동체가 형성되었다는 증거는 없으나, 이슬람 세계의 인식 속에 한국이 포함되어 있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크다. 이는 훗날 고려 시대의 보다 실질적인 접촉으로 이어지는 사전 단계라 할수 있다.
고려 시대: 이슬람과의 가장 실질적인 접촉
이슬람과 한반도의 관계가 가장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시기는 고려 시대이다. 13세기 몽골 제국의 확장 과정에서 중앙아시아 출신 무슬림 병사, 기술자, 상인들이 대규모로 동아시아에 유입되었고, 그 일부가 고려에 정착하였다.
당시 기록에서 이들은 중국식 표현으로 **회회인(回回人, Hoehoe)**이라 불렸다. 회회인들은 군사, 천문학, 역법, 의학, 무역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며 고려 사회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쳤다. 일부는 고려 관청에서 근무하였고, 한국인과 혼인하여 장기간 거주하기도 했다.
아랍과 페르시아의 지리 문헌, 중국과 고려의 사서에는 고려가 “중국의 동쪽에 위치한 나라”로 명확히 구분되어 기록되며, 고려가 독립된 정치·문화적 실체로 인식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또한 이 시기 제작된 지도와 문헌에는 이슬람 세계의 지리 인식이 반영되어 있다.
다만, 고려 시대의 무슬림들은 제도적인 종교 공동체나 이슬람 성원을 유지하지는 못했으며, 몽골 세력의 쇠퇴이후 점차 한국 사회에 동화되었다. 그 결과 이슬람 신앙은 지속되지 못했지만, 이 시기는 한반도에서 이슬람이 실제로 존재했던 가장 분명한 역사적 시기로 평가된다.
조선 시대: 신앙은 사라졌지만 지식은 남다
조선 왕조가 수립되면서 성리학은 국가 이념으로 확립되었고, 외래 종교와 문화에 대한 수용은 크게 제한되었다. 이로 인해 조선 사회에는 이슬람 신앙 공동체가 존재하지 않았으며, 고려 시대에 남아 있던 무슬림의 흔적도 대부분 사라졌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이슬람에 대한 지식과 정보가 완전히 단절되지는 않았다는 사실이다. 조선 시대의 여러지리서, 세계지도, 천문서에는 이슬람 세계의 지명과 천문학적 지식이 간접적으로 반영되어 있다. 이슬람권에서 발전한 역법과 천문 관측 기술은 중국을 거쳐 조선의 학문 체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즉, 조선은 이슬람을 신앙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았지만, 문명과 학문의 일부로서 이슬람 세계를 인식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근대 이전의 단절과 20세기 초의 재접촉
조선 말기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한국 사회는 급격한 변화를 겪었지만, 이슬람은 여전히 주변부에 머물렀다. 일부 한국인들은 중국, 만주, 일본 등지에서 무슬림과 접촉할 기회를 가졌으나, 이는 개인적 경험에 국한되었고사회적 영향력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한국 사회 전반에서 이슬람이 다시 등장하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는 한국전쟁이었다.
한국전쟁과 튀르키예 여단: 현대 한국 이슬람의 출발점
1950~1953년 한국전쟁 당시, 튀르키예는 유엔군의 일원으로 14,936명 규모의 튀르키예 여단을 파병하였다. 튀르키예 군인들은 전투에서의 용맹함뿐 아니라 고아 보호, 의료 지원, 민간인 구호 활동을 통해 한국 사회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 과정에서 일부 한국인들은 튀르키예 군인들의 신앙과 삶의 태도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이슬람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 시기에 등장한 한국인 무슬림들은 현대 한국 이슬람 공동체의 출발점이 되었다.
제도적 정착과 공동체 형성
전쟁 이후 이슬람은 점차 조직화되기 시작하였다.
1955년 한국 최초의 무슬림 단체가 결성되었고, 1960년대에는 한국 무슬림들의 성지순례가 시작되었다. 1967년에는 **한국이슬람교연맹(Korea Muslim Federation)**이 정부에 공식 등록되며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였다.
1970년대에는 꾸란과 이슬람 관련 서적들이 한국어로 번역되기 시작하였고, 1976년 서울 한남동에 한국 최초의 공식 이슬람 성원인 **서울중앙성원**이 개원하였다. 이 이슬람 성원은 예배 공간을 넘어 교육, 번역, 문화교류의 중심지 역할을 수행하였다.
이후 부산, 대구, 광주, 전주, 안양, 의정부, 김해 등 전국 각지에 이슬람 성원과 기도실이 설립되었다.
현대 한국과 이슬람의 공존
21세기에 들어서면서 한국의 무슬림 공동체는 외국인 노동자, 유학생, 국제결혼, 그리고 한국인 개종자들을 중심으로 더욱 다양해졌다. 현재 한국에는 약 20만 명의 무슬림이 거주하고 있으며, 이 중 약 3만~4만 명이 한국인무슬림으로 추산된다.
할랄 인증 제도, 이슬람 교육 기관, 장학 사업, 문화 교류 활동 등도 점차 확대되며 이슬람은 한국 사회의 다문화적 현실 속에서 자리 잡고 있다. 한국에서 이슬람은 정치적 종교가 아니라 평화롭고 공동체 중심적인 신앙으로 인식되고 있다.
맺음말
한국과 이슬람의 관계는 일시적인 만남이 아니라, 신라 시대의 문헌 인식에서 시작하여 고려 시대의 실질적 접촉, 조선 시대의 학문적 인식, 그리고 한국전쟁 이후의 제도적 정착을 거쳐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이어져 온 긴역사이다.
이슬람은 한국 사회에서 소수 종교이지만, 오랜 시간 동안 역사와 문명의 흐름 속에서 함께 존재해 온 동반자이며, 앞으로도 상호 이해와 공존을 통해 그 관계는 더욱 성숙해질 것이다.

